우리는 모두 각자의 단추를 채운다 - 육아와 독립, 의사에서 1인 개발자로
김솔
현관 앞, 오전 8시 50분
쪼그려 앉은 윤슬이의 작은 손가락이 윗옷 단추 구멍과 씨름 중이다.
1분...
2분...
내려다보는 내 안에서 작은 전쟁이 일어난다.
'지금 안 나가면 지각인데.'
'그냥 내가 해버릴까.'
'아냐, 혼자 할 수 있게 둬야지.'
손목시계를 힐끗 본다.
참지 못하고 슬쩍 손을 뻗었다.
"아빠가 도와..."
"아냐! 나 혼자 할 거야!"
윤슬이가 소리쳤다.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단호하게.
처음엔 그 짜증이 야속했다.
잘 못하고 있어서 도와주려는 건데 왜 화를 내는 거지?
그날 밤, 육아책을 읽다가 문득 깨달았다.
윤슬이는 스스로 성장하고 싶었던 거다.
혼자 해내고 싶었던 거다.
내가 그 순간을 뺏으려 했으니, 화가 날 수밖에.
그날 이후, 나는 '딴청'을 피우기로 했다.
윤슬이가 끙끙거릴 때면 짐짓 먼 산을 본다.
괜히 휴대폰을 꺼내 날씨 앱을 켜서 미세먼지 수치를 확인한다.
아무 이유 없이 현관 신발을 다시 정리하기도 한다.
그것은 "너를 믿는다"라는 무언의 신호이자, 부모로서의 조급함을 들키지 않기 위한 나만의 처방이다.
그렇게 긴 기다림 끝에 마침내
"다 했다!"
라는 외침이 들린다.
그제야 우리는 눈을 마주치며 함께 웃는다.
그 순간 나는 깨닫는다.
육아란 결국, 아이가 스스로 단추를 끼우는 그 시간을 견뎌주는 일이라는 것을.
그런 내가, 왜 14년이나 떠밀려 살았을까
나의 이런 태도는 어디서 왔을까.
어릴 적 부모님은 내게 많은 것을 '정해' 주셨다.
만 세 살 때였다. 매일 밖에 나가 뛰어놀던 나에게 엄마는 말씀하셨다.
"이제 구구단 못 외우면 밖에 못 나간다."
밖에 나가고 싶어서 억지로 외웠다.
정말 싫었다.
어느 날 갑자기 눈높이 학습지가 시작됐다.
너무 하기 싫어서 선생님이 오셔도 없는 척했다.
숙제도 안 하고 버텼더니 결국 그만두게 됐다.
생일이 되면 원하는 선물을 말했다.
게임기, 로봇 장난감 같은 것들.
하지만 돌아오는 건 늘 엄마가 골라주신 책이었다.
"지금 너한테는 이게 더 어울려."
내가 원하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갈등은 쌓여갔다.
초등학교 졸업 무렵, 나는 폭탄 선언을 했다.
"이제부터 학원 안 다닐래요.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할게요."
부모님은 처음엔 반대하셨지만, 결국 허락하셨다.
중학교 내내 나는 학원을 다니지 않았다.
남들은 선행 학습하느라 바쁠 때, 나는 밤새 게임하고 낮에는 농구를 했다.
좋아하는 것을 하다보니 잘하게 됬다.
게임은 PC방 대회에서 우승도 했다.
농구는 학교 대표로 뽑혔다.
불안하지 않았냐고?
아니, 오히려 기뻤다.
내가 좋아하는 걸 마음껏 할 수 있게 됐으니까.
친구들은 부러워했다.
대부분 억지로 학원을 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학교 1학년 첫 중간고사가 다가왔다.
친구들이 시험 기간에 독서실 가자고 했다.
공부에 관심이 없던 나는 그냥 재밌어 보여서 따라갔다.
시험 전날까지 놀기만 하다가, 문제집이 없던 나는 학원 다니는 친구에게 기출문제집을 얻어 풀었다.
다음날 시험을 봤더니, 어제 기출문제집에서 봤던 비슷한 문제가 수두룩했다.
결과는 전교 8등이었다.
선생님도, 친구들도 놀랐다.
"진짜 학원 안 다니는 거 맞아?"
부모님도 처음엔 불안해하셨지만, 그 뒤로는 나를 믿어주셨다.
게임처럼 등수가 나오니 재밌었다.
그 뒤로 시험 기간마다 독서실에 갔고, 중학교 3학년 1학기 중간고사에서 처음으로 전교 1등을 했다.
그런데 한 번 1등을 해보니 흥미가 떨어졌다.
기말고사는 거의 공부를 안 했고, 100등대로 떨어졌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내가 선택한 것이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나한테 있다고 생각했다.
그 뒤로 고등학교에 입학후에는 열심히 공부해서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어른이 된 후, 나는 다시금 '타인의 속도'에 휩쓸려 있었다.
남들이 가라는 대로, 생각할 틈도 없이 따라가고 있었다.
의대 입학 직후부터 '이 길이 맞나' 싶었다.
하지만 선배들의 말에 떠밀렸다.
"일단 빨리 졸업해."
"다들 인턴 하는데 너도 해야지."
"4년 더 수련해서 전문의 따야지. 안 그러면 군대 가야 해."
그렇게 7년의 시간이 흘렀다.
외과 전공의 1년 차 때였다.
주 120시간 이상 근무하던 시절이었다.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병원에서 보냈다.
새벽 3시, 응급 수술 중이었다.
갑자기 숨이 막혔다.
피곤해서 그런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숨이 너무 찼다.
다음 날 호흡기내과에서 검사를 받았다.
천식이었다.
어릴 적 오래 치료받았던 천식이 다 나은 줄 알았는데, 다시 찾아온 것이다.
교수님들의 인생을 보며 '저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늘 생각해왔는데, 이건 몸이 보내는 경고였다.
하지만 멈추지 못했다.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다.
그렇게 전공의 4년을 마쳤고, 나는 '외과 전문의'가 되었다.
사회가 말하는 성공한 인생, 남들이 보기엔 더 이상 걱정할 필요 없어 보이는 안정된 궤도 위에 서 있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그 질문이 남아 있었다. 이 길이 정말 내 길인가.
병원을 떠나 공중보건의사로 군 복무를 마치던 날, 나는 결심했다.
"이제 내 인생의 단추는 내가 끼우겠다."
그렇게 나는 의사 가운을 벗었다.
아무도 없는 앱 앞에서
지금 나는 1인 앱 개발자다.
병원이라는 거대한 시스템 밖으로 나왔다.
맨몸으로 세상과 부딪히고 있다.
물론 쉽지 않다.
코드를 짜는 건 결과가 바로 나와서 재밌다.
하지만 기획부터 디자인, 마케팅까지 혼자 다 해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앱을 만들어도 알려지지 않으면 유령 마을이 되어버린다.
앱을 열어도 아무도 없다.
방문자 수 '0', 다운로드 수 '0'.
그 숫자들을 멍하니 바라보다 보면 포기하고 싶을때도 있다.
'누가 좀 도와줬으면...'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윤슬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아냐! 나 혼자 할 거야!"
그랬다. 윤슬이는 도움을 거부했다.
혼자 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대신 끼워준 단추는 '내 것'이 아니다.
끙끙대는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내 것'이 된다.
윤슬이가 스스로 단추를 끼워야 하듯, 나도 스스로 이 막막함을 뚫어야 한다.
함께, 홀로서기
아이가 태어나고 취미였던 게임을 못 하게 됐다.
대신 책을 읽기 시작했다.
독서를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어서 육아책부터 시작했다.
아이가 잠든 밤, 침대 머리맡에서 육아책을 펼쳤다.
"육아의 궁극적 목표는 아이의 독립이다."
그 한 문장이 마음에 박혔다.
나도 육아의 목표를 '독립'으로 정했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그렇다면 내 인생의 목표는 뭘까?
그 질문을 안고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읽었다.
책을 읽을수록 확신이 생겼다.
육아의 목표가 아이의 독립이라면, 내 인생의 목표 또한 나 자신의 독립이다.
나 자신의 독립을 위해 '좋은 아빠', '성공한 의사'라는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진짜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런데 독립을 생각할수록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독립한다는 건 혼자가 된다는 뜻일까?
에리히 프롬의 말이 답을 주었다.
성숙한 사랑이란 필요가 아니라 사랑에서 시작한다.
Immature love says: 'I love you because I need you.'
Mature love says: 'I need you because I love you.'
예전의 나는 "너 없이는 못 살아"라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각자의 단추는 각자가 끼워야 한다. 그리고 그 옆에서 묵묵히 기다려주는 것, 그게 사랑이다."
독립은 혼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혼자서도 괜찮은 사람이 되어, 진심으로 함께하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현관 앞에서 아이의 단추가 제 구멍을 찾아갈 때까지 딴청을 피우며 기다린다.
그리고 책상 앞에 앉아, 서툴지만 나만의 속도로 '1인 개발자'라는 새로운 인생의 단추를 끼운다.
아이와 나, 둘 다 서툰 손으로 각자의 단추를 찾고 있다는 걸 안다.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단추를 끼우며, 나란히 걸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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