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새벽 이불 빨래하던 의사 아빠의 반성문 (밤기저귀 떼기의 과학)
김솔
새벽 3시, 또 젖은 이불
새벽 3시.
손끝에 축축한 감촉이 느껴졌다.
눈을 떠보니 윤슬이가 울고 있었다.
이불 한가운데 젖은 자국이 퍼져 있었다.
사흘째였다.
반쯤 잠든 채로 아이를 안아 올렸다.
아이를 씻기고, 침대 시트를 뜯고, 윤슬이를 달래고 다시 재웠다.
시계는 3시 47분.
젖은 이불을 세탁기에 넣으며 생각했다.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 걸까.'
낮 기저귀의 승리, 밤 기저귀의 참패
윤슬이가 28개월에 낮 기저귀를 뗐다.
"아빠, 쉬 마려워!"
팬티만 입고 화장실로 뛰어가는 모습이 대견했다.
아내와 하이파이브를 치며 생각했다.
이 기세라면 밤도 금방이겠지.
그날 밤, 자신 있게 팬티를 입혔다.
하지만 현실은 내 예상과 달랐다.
첫날 새벽, 축축한 이불을 갈았다.
'첫날이니 실수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둘째 날 새벽엔 시트를 두 번이나 갈아야 했고, 셋째 날이 되자 장롱 속에 있던 여분의 이불마저 모두 동이 나버렸다.
새벽 내내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건조기의 '웅-' 하는 소리를 들으며, 정신이 아득해졌다.
결국 나흘째 되던 날 밤.
나는 조용히 서랍 깊숙이 넣어뒀던 기저귀를 다시 꺼냈다.
완벽한 항복이었다.
주변에서는 "그냥 팬티 입히고 버티면 된다"고 했다.
인터넷에는 "우리 애는 일주일 만에 뗐어요"라는 글이 넘쳤다.
그럴 때마다 자괴감이 밀려왔다.
'남들은 다 되는데 왜 우리만 안 되지? 내가 뭘 잘못 가르친 걸까?'
만약 지금 당신도 매일 새벽 빨래를 하며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잠시 멈추고 이 글을 읽어주셨으면 한다.
결론부터 말하겠다. 당신 잘못이 아니다.
의사인 내가 몰랐던 충격적인 사실
그때부터 논문과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수많은 육아 관련 책을 봤지만,
'기다리면 된다'는 막연한 말뿐 도대체 '왜' 실패하는지 명쾌한 의학적 설명은 찾기 힘들었다.
솔직히 인정한다. 의사 가운을 벗으면 나도 그저 서툰 초보 아빠일 뿐이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밤 소변은 아이 의지의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가 아이에게 "왜 또 쌌어?"라고 물을 때, 그건 날지 못하는 아기 새에게 "왜 못 날아?"라고 묻는 것과 같다.
아직 날개가 안 자랐는데 어떻게 날겠는가.
밤 기저귀를 뗄 수 있으려면 두 가지 '날개'가 자라야 한다.
첫째, 항이뇨호르몬.
어른은 밤에 자는 동안 소변 생산을 줄여주는 호르몬이 나온다.
그래서 8시간을 자도 화장실에 안 가도 된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 호르몬 시스템이 미성숙하다.
낮이든 밤이든 같은 속도로 방광이 차오른다.
방광은 작은데 소변은 멈추지 않으니, 넘치는 게 당연하다.
둘째, 뇌와 방광의 연결.
잠결에 "방광이 찼다"는 신호를 뇌가 알아차리고 "일어나!"라고 명령을 내려야 한다.
이 신경 회로가 안정적으로 작동하려면 만 5세는 되어야 한다고 한다.
그제야 이해했다.
내가 매일 새벽 빨래를 한 건, 아이의 실수가 아니었다.
날개가 안 자란 새에게 날라고 떠민 내 잘못이었다.
'나이'가 아니라 '신호'를 기다려라
그럼 언제 시도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나이"가 아니라 "아이가 보내는 신호"를 보라고 한다.
가장 확실한 신호는 '아침에 뽀송한 기저귀'다.
5일 연속으로 아침 기저귀가 마른 채로 나온다면, 날개가 자라기 시작했다는 증거다.
또 하나는 아이가 자다 깨서 "쉬 마려워"라고 말하는 경우.
뇌와 방광의 연결이 켜졌다는 뜻이다.
만약 아이가 만 5세 전인데 아직 밤 기저귀를 못 뗐다면?
전혀 늦은 게 아니다.
신호 없이 시도하면 아이는 스트레스 받고, 부모는 빨래 지옥에 빠질 뿐이다.
나처럼.
나는 기다리기로 했다.
37개월이 되던 어느 날, 드디어 신호가 왔다. 일주일 내내 아침 기저귀가 뽀송했다.
"윤슬아, 오늘부터 밤에도 팬티 입고 자볼까?"
"응!"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 "새벽에 깨우기"
한 가지 의사로서 꼭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
빨래가 두려워 새벽에 알람을 맞추고, 곤히 자는 아이를 흔들어 깨워 화장실에 데려가는 분들이 있다.
제발 하지 마시라.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들은 이를 절대 금물이라고 한다.
비몽사몽한 상태에서의 배뇨는 훈련 효과가 전혀 없다.
오히려 성장 호르몬이 나오는 깊은 잠을 방해해 아이 성장을 저해한다.
배뇨를 스트레스로 인식하게 만들 수도 있다.
자기 전 1~2시간 동안 수분 섭취를 줄이고, 잠들기 직전 화장실을 다녀오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5일 연속 성공, 그리고 무너진 밤
드디어 시작했다.
첫날 밤. 성공. 둘째 날. 성공. 사흘, 나흘, 닷새. 연속 성공.
'됐다!'
그 다음 주 월요일 새벽.
손끝에 익숙한 축축함이 느껴졌다.
화요일 새벽. 또.
수요일 새벽. 또.
3일 연속 실패.
솔직히 화가 치밀었다.
'왜 또 이래? 분명 됐었잖아.' 입 밖으로 나오려는 말을 삼켰다.
축축한 이불 위에서 우는 윤슬이를 안아 올렸다.
작은 몸이 벌벌 떨고 있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이 아이도 자기가 왜 이러는지 모른다. 나보다 더 당황하고 있다.
"괜찮아. 누구나 그럴 수 있어."
윤슬이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아빠랑 같이 뽀송한 이불로 바꾸고 다시 자자. 괜찮아."
며칠 기저귀를 다시 채웠다.
그리고 다시 시도했다.
또 실패하면 또 쉬었다.
찼다 벗었다를 수십 번 반복했다.
"다시 채우면 영영 못 떼는 거 아냐?"
아니다.
아이도 컨디션이 안 좋으면 퇴행할 수 있다. 그게 정상이다.
그리고 어느 날, 거짓말처럼 실수가 사라졌다.
가장 큰 적은 아이의 방광이 아니었다
이 긴 여정에서 배운 가장 큰 교훈은 이것이다.
밤 기저귀 떼기의 가장 큰 적은 아이의 방광이 아니라 '부모의 조급함'이다.
혼내면 오히려 역효과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호르몬 분비에 이상이 생겨 실수가 늘어난다.
혼내면 더 싸게 된다는 뜻이다.
방수 매트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새벽에 매트리스까지 젖으면 평정심을 유지하기 어렵다.
부모의 멘탈을 지키기 위해 미리 깔아두자.
밤 기저귀 떼기 체크리스트
- 아침 기저귀가 5일 연속 뽀송한가?
- 아이가 자다가 깨서 소변 의사를 표현하는가?
- 방수 매트를 깔아뒀는가? (부모의 멘탈 보호용)
- 자기 직전 화장실에 다녀왔는가?
- 실수해도 절대 혼내지 않을 마음의 준비가 됐는가?
어젯밤.
윤슬이가 잠결에 일어나 화장실에 다녀왔다.
"아빠, 나 쉬 했어."
"잘했어. 다시 자자."
이불은 뽀송했다.
새벽 3시에 젖은 이불을 부여잡고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자책하던 그때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네 잘못이 아니야. 아이 잘못도 아니야. 그냥 아직 때가 안 된 거야. 기다려줘. 날개는 반드시 자라."
지금 이 순간에도 축축한 이불을 보며 한숨 쉬고 있을 부모님들께, 의사 아빠로서 그리고 먼저 겪은 선배 아빠로서 말씀드린다.
괜찮습니다. 아이는 자기 속도로 건강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당신이 할 일은 '훈련'이 아니라 '기다림'입니다. 그날은, 반드시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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