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간 바꿔야지' — 의자가 넘어간 날, 아이에게 배운 것
김솔
매일 듣던 소리
끼익, 끼익.
세 식구가 저녁을 먹고 있으면 윤슬이가 의자 위에서 몸을 앞뒤로 흔들었다.
의자 다리가 흔들릴 때마다 나는 소리였다.
매일 듣는 소리였다.
"윤슬아, 밥 먹을 땐 얌전히 앉아서 먹어."
말을 하고 잠깐 고개를 돌린 사이, 등 뒤에서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돌아보니 윤슬이가 의자째 바닥에 넘어져 있었다.
윤슬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가, 한 박자 늦게 울음이 터졌다.
안아 올리고 턱을 보니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입 안을 벌려보았다.
아래 앞니 하나가 잇몸 안으로 밀려 들어가 있었다.
머리는 빨랐다, 손은 떨렸다
유치가 잇몸 안으로 밀려 들어간 거다.
영구치에 영향이 갈 수 있다.
치과에 가서 X-ray를 찍어야 한다.
머리는 빠르게 돌아갔다. 손은 따라오지 않았다.
내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치과를 가야지 생각하며 시계를 봤다.
6시를 조금 넘기고 있었다.
혹시 몰라 핸드폰으로 근처 치과를 검색했다. 진료가 6시 반까지였다.
전화를 걸었다.
"지금 오시면 봐드릴게요."
"치과 안 가! 아파!"
치과는 집에서 5분 거리에 있었다.
신발을 끌어 신고 현관문을 열었다.
아내가 윤슬이 신발을 챙겨 들고 따라나왔다.
바깥 공기가 차가웠다. 미세먼지가 뿌옇게 깔린 저녁이었다.
마스크를 쓸 틈도 없이 윤슬이를 안고 뛰었다.
"치과 안 가! 아파!"
윤슬이의 손가락이 절대 놓지 않겠다는 듯 내 목 뒤에 파고들었다.
"아프지 않을 거야. 그냥 검사하러 가는 거야. 괜찮을 거야."
윤슬이한테 하는 말인지 나한테 하는 말인지 모를 말을 하면서 무작정 달렸다.
아이는 "지금"을 살고 있었다
치과 문을 열었다.
"윤슬이지요? 생년월일이 어떻게 되죠?"
전화번호로 이미 접수가 되어 있었다. 생년월일만 확인하고 바로 진료실로 들어갔다.
진료실 불빛이 환했다.
윤슬이의 울음이 멈췄다.
윤슬이가 아직 작아서 내가 안은 채로 진료 의자에 올라갔다.
선생님이 동그란 작은 기계를 입 안에 넣자 화면에 X-ray 사진이 떴다.
"이를 다물어볼까?"
윤슬이가 이를 꾹 다물었다.
"이번엔 옆으로 지글지글 해볼까?"
윤슬이가 이를 옆으로 지글지글 움직여보았다.
1분 전까지 "안 가!"라고 울며 내 목을 움켜쥐던 아이였다.
낯선 의사의 지시를 듣고, 이해하고, 따르고 있었다.
X-ray 모니터 속, 하얀 유치 하나가 잇몸 뼈 안으로 푹 박혀 있었다.
선생님은 3주 정도 경과를 보자고 하셨다.
들어간 이는 대부분 자연적으로 다시 올라온다고 설명해주셨다.
3주가 지나도 변화가 없으면 영구치에 영향이 없는지 CT로 확인해야 할 수도 있다고 덧붙이셨다.
윤슬이를 내려다봤다.
내 손은 떨렸고, 이 아이의 손은 떨리지 않았다.
의자를 바꾼 밤
집에 돌아와 식탁 앞에 섰다.
넘어진 의자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언젠간 바꿔야지."
매번 이 의자를 보면서 했던 말이다. 위험한 줄 알면서도 치우지 않았다.
그날 밤, 흔들리는 의자를 식탁에서 빼고 다른 의자로 바꿨다.
넘어진 의자는 미련 없이 치워 버렸다.
"언젠간"이 아니라 "지금" 바꿨다.
바꾼 의자에 앉은 윤슬이가 밥을 먹기 시작했다.
입안 가득 밥을 넣은 채로 갑자기 울었다. "이 아파."
턱에는 시퍼런 멍, 입안에는 밥, 앞니는 하나 들어가 있었다. 웃음이 났다.
치과에서 처방받은 진통제를 먹이고 윤슬이를 재웠다.
넘어졌던 일은 까맣게 잊은 듯, 작은 코를 골며 편안하게 자고 있었다.
아이는 이미 내일을 살고 있었다.
아빠만 아직 오늘의 의자를 정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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