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 1번에서 떨어지고, 16년이 흘렀다
김솔
99%의 확신이 1%의 불운에 걸린 날
재수 때 수능을 언어영역을 망쳤다.
현역 때도 늘 1등급이었고 한 번도 시간이 모자랐던 적이 없던 언어영역에서 지문 두 개를 통으로 날렸다.
긴장해서 머리가 하얘진 것도 아니었는데, 종료 5분 전이라는 방송이 나왔을 때 읽지 못한 지문이 두 개나 남아 있었다.
생전 처음 겪는 시간 배분 실패를, 하필이면 재수때 수능에서 하다니.
그런데 수학, 외국어, 탐구에서 선방했다.
수외탐 전형으로 계산해 보니 인제대 의대 합격 확률이 99%였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재수까지 하면서 이 정도면 됐다 싶었고, 나머지 대학들은 별생각 없이 넣었다.
스무 살의 나에게 인천은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은 답답한 곳이었다.
그저 부모님 곁을, 그리고 지겨운 인천을 빨리 떠나고 싶어 통학할 수 없는 곳으로만 골랐다.
하나는 관동대였고, 다른 하나는 강원도 원주에 있는 연세원주의대였다.
어차피 인제대에 갈 거니까 다른 대학들에 대해서는 크게 알아보지 않았다.
결과가 나왔다. 대기 1번이었다.
최초합은 당연히 안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한 명만 빠지면 됐다.
한 명쯤은 다른 대학으로 가지 않을까.
기다렸다. 그리고 기다렸다.
99%의 합격 확률이 하필이면 그 1%의 불운에 걸려버린 거였다.
별생각 없이 넣었던 대학들은 모두 합격했다.
관동대 의대에도 합격했지만 수석이 아닌 차석이라 전액 장학금이 나오지 않았다.
어차피 장학금을 못 받을 거라면 연세대라는 간판이라도 낫겠지 싶어 연세대 원주의대로 최종 결정을 했다.
스무 살, 살면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낯선 도시에 짐을 풀면서도 온전히 마음을 내어주진 않았다.
새내기 배움터를 갈 때까지도 인제대에서 추가 합격 연락이 올지도 모른다고 내심 기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끝내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인제대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접은 날, 나는 생각했다.
원주에서 의대를 졸업할 때까지 딱 6년만, 눈 딱 감고 버티자고.
잠깐 머물 줄 알았던 곳에서의 16년
원주에서 16년을 살게 될 줄은 몰랐다.
6년이 지나도 원주를 떠나지 못했다.
예과 2학년 무렵 동기였던 지선이와 연인이 되었고, 졸업 후에도 별생각 없이 모교 병원에 남으면서 시간은 계속 흘렀다.
전공의 3년 차 때 결혼을 하게 되었고 전문의가 되자마자 윤슬이가 태어났다.
원주의 모교 병원에서 첫울음을 터뜨렸고, 원주의 집에서 처음 걸음마를 뗐다.
원주가 아니었다면 없었을 일들이 원주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나는 거의 10년 전부터 계속 떠나고 싶었다.
지방 소도시의 세계는 좁았다. 늘 같은 사람을 만나고, 같은 이야기만 돌았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금방 아는 사이의 아는 사이로 이어졌다.
바깥세상은 빠르게 움직이는데 나만 제자리인 것 같았다.
원주에 머물러야 할 이유는 이미 사라졌는데 관성으로 살아가고 있었고, 그 답답함이 해마다 겹겹이 쌓여갔다.
2년 전, 지선이에게 말했다.
원주를 떠나자고. 더 이상은 안 되겠다고, 이번에는 진심이라고 강하게 말했다.
하지만 떠나겠다는 선언과 실제로 떠나는 건 전혀 다른 일이었다.
직장 문제, 아이의 어린이집, 집 계약 만기 등 넘어야 할 현실의 벽이 많았다.
마음은 이미 원주를 떠났는데 몸이 따라가지 못하는 유예 기간이 2년이나 계속됐다.
짐은 어느새 16년 치가 쌓여 있었다.
결국 지선이의 직장이 인천으로 정해지면서 비로소 움직일 수 있었다.
이사 전날 밤, 10년을 기다린 문장을 적었다. "애증의 원주, 내일 드디어 탈출."
10년을 기다린 탈출, 그리고 새로운 혼돈
16년 살던 곳을 떠나는 순간은 생각보다 담담했다.
아쉬움보다 후련함이 컸다. 밤 9시가 넘어서야 인천 검단에 짐을 다 부려놓을 수 있었다.
다음 날부터 혼돈이 시작됐다.
알 수 없는 시멘트로 막혀버린 냉장고 정수기 배관, 원인 모르게 고장난 식기세척기, 매트 시공까지.
오래된 짐을 옮기는 것만큼이나 새로운 삶의 테두리를 맞추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이사 후 며칠간 피로가 쌓이니 사소한 것에도 짜증이 났다.
새집에서 잠을 설치며 지쳐 있던 지선이에게 괜히 화를 냈고, 나 역시 여유가 없었다.
16년의 익숙함을 벗어나 낯선 곳에 다시 뿌리를 내리는 일은 예민하고 피곤한 과정이었다.
그 어수선한 와중에 윤슬이와 둘이 지하철을 탔다.
새 동네에서의 첫 외출이었다.
아이는 생소한 에스컬레이터를 무서워하면서도 금세 적응해 냈다.
오랜만에 타는 지하철을 정말 좋아했다.
당근마켓에서 중고 책을 100권 넘게 가져온 날,
윤슬이는 정리가 덜 된 거실 바닥에 주저앉아 끝없이 책을 펼쳐보았다.
세이펜으로 책을 찍고 듣기를 반복하는 아이의 뒷모습은 평온했다.
정리가 안 된 집, 커튼도 없이 햇빛이 날것으로 쏟아지는 거실에서,
우리는 낯선 동네를, 그리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가는 서로의 모습들을 조금 더 깊이 알아가는 중이었다.
인생은 찰나의 점들이 이어지는 과정
인천에서 태어나 20년을 살았다.
부모님 곁을, 인천을 빨리 떠나고 싶어 통학할 엄두를 낼 수 없는 먼 대학들만 골랐다.
대기 1번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원주에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16년을 살았고, 10년 동안 떠나기를 갈망했다.
그리고 결국 다시 인천으로 돌아왔다.
도망치고 싶었던 곳에서 떠났더니, 도망치고 싶었던 또 다른 곳으로 돌아온 셈이다.
원주가 평생 그리울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그 예상치 못한 16년이 없었다면 지선이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고, 윤슬이도 없었을 것이다.
대기 1번에서 떨어지지 않았다면 내 삶에 존재하지 않았을 기적들이다.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수능도, 원주도, 인천도, 전부 내가 계획한 방향이 아니었다.
하지만 삶은 예측할 수 없는 선이 아니라, 무수히 찍히는 찰나의 점들이 이어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운명의 궤적이 어디로 향하든 눈앞에 놓인 '지금, 여기'를 충실히 살아낼 뿐이다.
어제는 빈 거실 창문에 커튼을 달았고, 내일이면 거실 빈자리에 새 소파가 들어올 것이다.
거실 한편에는 당근마켓에서 가져온 백 권 남짓한 아이의 책들과 새로 산 장난감들이 흩어져 있다.
그리고 다음 주부턴 매일 아침 9시 37분이 되면, 윤슬이는 아파트 후문에서 유치원 셔틀버스에 오를 것이다.
거창한 계획은 더 이상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계획에 없던 낯선 곳에 떨어졌어도, 나는 그저 내게 주어진 이 사소한 오늘 하루를 선명하게 살아갈 뿐이다.
나의 새로운 삶은 그렇게 다시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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