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번의 수능 시험에서 배운 아빠가 딸에게 물려주고 싶은 단 하나의 자산
김솔
수능 시험장의 시계는 유독 빨리 흐른다.
두 번째 수능, 1교시 국어 영역의 종료 벨이 울렸다.
답안지 마킹을 확인하는 손끝에 익숙한 절망감이 스쳤다.
두 지문.
난생 처음으로 두 지문을 통째로 읽지도 못했다.
1년 전의 나였다면, 바로 그 순간 모든 것이 무너졌을 것이다.
떨리는 손으로 다음 시간을 망치고,
결국 시험장 밖에서 울음을 터뜨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했다.
심장은 분명 철렁했지만, 그뿐이었다.
나는 놀랍도록 담담하게 시험지를 접고 있었다.
절망이 차오를 자리에
'다음 시간부터 잘보자. 수리, 외국어, 과탐 보는 학교 가면 되지'라는 생각이 불쑥 떠올랐다.
1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대체 무엇이 달라진 걸까.
첫 번째 수능을 준비하던 고3 시절,
내 삶은 '조급함'이라는 단어로 요약된다.
남들보다 공부를 늦게 시작했다는 강박에, 나는 나를 사지로 몰아넣었다.
수시, 정시, 논술, 면접.
그 모든 것을 혼자 준비하며 스스로를 쥐어짰다.
내 삶에는 오직 '공부만' 존재했다.
운동도, 독서도, 친구와의 시간도 없었다.
목표는 명확했다.
서울대 의대.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이 순전히 나만의 선택이었을까?
당시 사회가 의대를 바라보던 시선, 주변의 기대, '괜찮은 삶'의 기준.
그 모든 것들이 내 선택이라는 이름으로 뒤섞여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저 '해내야 한다'는 것만 알았다.
스스로를 돌보지 않는 공부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첫 수능 당일.
수리 영역 시간이 끝났다.
마킹을 확인하던 손가락이 멈췄다.
28번부터 30번까지, 한 줄로 세운 답안지가 나를 올려다본다.
복도에서 들려오는 다른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유리창을 긁는 소리처럼 날카롭게 들렸다.
시계 초침 소리만이 내 귓가에서 점점 커져갔다.
그 순간, 내 일 년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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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이 끝나고 차가운 공기 속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답안을 확인할 용기조차 없었다.
3주 후, 성적표가 도착했다.
수리 영역, 3등급.
인생 처음 받아보는 등급이었다.
원하는 대학에 지원조차 할 수 없었다.
그것은 타인의 시선과 사회의 기준에 맞춰 '괜찮은 삶'의 끄트머리라도 잡으려던,
스스로를 다그친 몸부림의 당연한 결과였다.
성적표가 도착한 날, 나는 오래 그 숫자들을 들여다봤다.
서울의 유명 학원에 갈 성적도 아니었고,
부모님께 또 한 번 큰돈을 부탁드릴 염치도 없었다.
주변에선 걱정 반 의아함 반이었다.
"독학이 말처럼 쉬운 줄 알아? 사람 그렇게 쉽게 안 변해."
"강제성이 없으면 무조건 풀어지게 되어 있어. 그냥 학원 가."
어쩌면 '독학재수'라는 선택은 도피처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홀로' 서기로 한 그 순간이 내 삶의 주도권을 내가 쥐는 첫 순간이었다.
2010년 2월의 어느 아침.
오전 8시, 동네 작은 헬스장 문을 연다.
이른 시간이라 텅 비어있다.
창문 너머로 아침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온다.
러닝머신 위에 올라선다.
시작 버튼을 누른다.
기계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고, 내 발걸음도 리듬을 찾아간다.
가볍게 뛰기 시작하자 지난 몇 달간 움츠러들었던 몸이 조금씩 깨어난다.
텅 빈 공간에 내 발소리만 규칙적으로 울린다.
이상하다.
고3 때는 운동할 시간이 '아까웠는데',
지금은 이 30분이 하루를 지탱하는 기둥처럼 느껴진다.
8시 30분, 헬스장을 나와 독서실로 향한다.
독서실은 9시에 문을 여는 곳이었다.
하지만 나는 며칠 전 용기를 내어 독서실 아주머니께 부탁을 드렸다.
"아주머니, 부탁이 있는데요. 제가 8시 40분에 와도 될까요?"
"왜? 독서실은 9시에 여는데."
"수능 1교시 언어 영역이 8시 40분에 시작하거든요. 그 시간에 맞춰 공부를 시작하고 싶어서요."
아주머니는 잠시 나를 바라보시더니, 부드럽게 웃으셨다.
"그래, 알았어. 열쇠 여기 둘 테니까 네가 열고 들어가."
8시 40분.
차가운 문고리를 돌린다.
텅 빈 독서실이 나를 맞는다.
형광등을 하나씩 켠다.
백색 불빛이 책상 위로 쏟아진다.
가방에서 교재를 꺼낸다.
손수 고른 문제집들이다.
학원 커리큘럼이 아닌, 내가 나의 약점을 분석해 선택한 책들.
스터디 플래너를 편다.
어제 저녁 내가 짠 시간표가 거기 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정한 시간에, 내가 정한 방식으로 하루를 시작한다는 것.
그것은 고3 때 느껴본 적 없는 '뿌듯함'이었다.
독학재수의 시간은 '수능 공부'의 시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삶을 스스로 운영하는' 시간이었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일어나기.
운동으로 몸과 마음을 깨우기.
잠은 충분히 자기.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속도'를 믿기로 했다.
모두가 듣는 1타 강사의 화려한 인터넷 강의를 끄고, 묵묵히 교과서의 목차를 다시 읽었다.
남들이 푸는 두꺼운 문제집 대신, 내게 맞는 얇은 기출문제집을 택했다.
그것은 '나'의 속도와 방식을 믿기로 한, 나의 첫 번째 자율적인 선택들이었다.
고3 때와 달라진 것은 단 하나였다.
목표를 향해 '달리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나'를 지키는 것에 집중했다.
그리고 매일 밤 스터디플래너를 보며 생각했다.
'오늘도 약속을 지켰네.'

그 약속은 '의대 합격'이 아니라 '나만의 속도를 지키겠다'는 것이었다.
타인의 통제가 아닌, 스스로의 의지로 하루를 온전히 살아낸다는 감각.
'내가 나의 주인이 되어가고 있다'는 이 느낌.
이것이 내가 처음 맛본 내 삶을 주도하는 태도였다.
그리고 다시, 두 번째 수능 1교시.
종료 벨이 울렸다.
인생 처음으로 두 지문이나 읽지 못했다.
작년, 1등급을 받았던 바로 그 언어 영역에서.
1교시를 망쳤다는 '결과'는 분명했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나의 지난 1년은 고작 1교시 성적 따위에 무너질 만큼 가볍지 않다는 것을.
매일 아침 8시 헬스장에서 흘린 땀.
8시 40분 텅 빈 독서실 문을 열던 그 고요함.
학원 대신에 스스로 공부를 택했던 수백 번의 선택.
나만의 속도를 믿기로 한 다짐.
그 시간들이 지금 내 안에서 단단한 무언가가 되어 있었다.
덤덤하게 다음 교시를 준비하는 나의 모습.
그것은 지난 1년간 내가 치열하게 훈련한 '스스로 선택하는 삶의 자세' 그 자체다.
결과를 받아들이되,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다음 단계에 집중하는 용기.
그해 수능, 나는 의대에 합격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합격증이 아니었다.
두 번의 수능을 통해 얻은 것은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이었다.
폴 김 작가는 『오늘 당신은 어떤 용기를 내었는가』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에게 남겨주고 싶은 유산은 돈도 명예도 아닌 삶을 대하는 주체적인 태도이다.
부모나 타인이 보기에 괜찮은 삶이 아니라 내가 원하고 지키고 싶은 가치 있는 삶.
그 속에 깃든 고유함이 결국 가장 확실한 자산이 된다."
대학 합격증보다 더 값진 것.
내가 두 번의 수능을 통해 얻은 가장 확실한 자산은 바로 그것이었다.
'타인이 보기에 괜찮은 삶'이 무너지더라도,
'내가 지키고 싶은 가치 있는 삶'을 다시 세울 수 있는 단단한 마음.
그날 1교시를 망친 뒤에야, 나는 비로소 내가 얻은 것의 가치를 분명히 볼 수 있었다.

15년이 지난 지금,
나는 외과 전문의 가운을 벗고 네 살 딸아이를 키우며 새로운 길을 준비하고 있다.
또 한 번의 '독학재수'를 하는 셈이다.
주변에선 묻는다.
"그 고생해서 전문의 땄는데 아깝지 않아?"
"다들 부러워하는 직업인데 왜?"
"수입이나 안정성은 어떡하고?"
외과 의사로서 나는 매일 생사의 기로에 선 환자들을 만났다.
그들을 살리는 일은 숭고했다.
하지만 어느 날 깨달았다.
내가 정말로 지키고 싶은 것은 '생명을 구하는 의사'라는 타이틀이 아니라,
"매일 아침 딸아이와 함께 아침을 먹으며 그날의 계획을 세우는 소소한 일상" 이라는 것을.
독학재수 시절,
8시 40분에 혼자 독서실 문을 열며 배운 것.
그것은 '내 삶의 시간표는 내가 짠다'는 단순하지만 혁명적인 진실이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이뤘는가'가 아니다.
'어떻게 살아가는가'다.
매일 아침, 나는 여전히 8시 40분에 하루를 시작한다.
한때는 텅 빈 독서실 문을 혼자 열었지만,
이제는 작은 손을 꼭 잡고 어린이집 문을 연다.
"아빠, 오늘도 일찍 데리러 올 거지?"
그 목소리에 답하며 나는 안다.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그것은 타인이 정한 '성공'이 아닌, 내가 선택한 '일상'이다.
딸아이가 언젠가 자신만의 시험 앞에 설 때, 나는 이 마음을 물려주고 싶다.
주체적인 삶의 태도라는, 그 어떤 유산보다 확실한 자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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