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코딩을 왜 배워요?" 파이썬 까막눈이 장관상을 받기까지
김솔
손이 떨렸다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상, AI 인재상."
이름이 호명되고 무대로 걸어 나갔다.
200명 중 5명.
상장을 받아 드는 순간, 객석이 아닌 9개월 전의 어느 밤이 겹쳐 보였다.
이어드림스쿨 지원을 고민하며 선배 기수의 후기를 읽던 밤이었다.
장관상을 받았다는 대목에서 스크롤을 멈추고, 나는 다이어리 귀퉁이에 이렇게 적어두었다.
"나도 저렇게 되면 좋겠다."
반쯤은 농담이었다.
파이썬 print 문법도 모르는 의사가 무슨 장관상이냐고.
그런데 그 농담이, 진짜가 됐다.
화면 속의 '아기화한'
2022년, 백령도.
공중보건의사로 발령받은 그 섬에서 딸 윤슬이가 태어났다.
인천에서 배로 4시간. 안개라도 끼면 며칠씩 발이 묶이는 고립된 섬.
딸의 첫 웃음도, 첫 뒤집기도 나는 픽셀이 깨진 스마트폰 화면으로만 지켜봐야 했다.
내 생일날이었다.
당시 9개월이었던 윤슬이는 아직 "아빠"라는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할 때였다.
영상통화 화면이 켜지자, 아내가 윤슬이의 뒷모습을 비췄다.
아이는 커다란 분홍색 리본을 메고 '인간 화환'이 되어 있었다.
리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아빠 생일 축하해요. 선물은 윤슬이에요."
말도 못 하는 아이의 등 뒤에 매달린 그 문구를 보는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동시에 목이 메었다.
저 작은 등을 한 번이라도 쓸어주고 싶은데.
화면을 터치하면 닿을 것 같은데, 손끝엔 차가운 유리 액정만 느껴졌다.
나는 더 이상 '화면 속 아빠'로 남고 싶지 않았다. '옆에 있는 진짜 선물'을 안아주는 아빠가 되고 싶었다.
그날 결심했다. 공보의가 끝나면,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 곁을 지키겠다고.
정해진 길 vs 내가 만드는 길
2025년 3월, 소집해제. 내 앞에는 두 개의 문이 있었다.
하나는 익숙한 '의사의 문'. 열기만 하면 안정된 삶과 고소득이 보장된다.
하지만 그 대가로 나는 다시 '주말에만 놀아주는 아빠'로 돌아가야 했다.
다른 하나는 '안개 속의 문'. 무엇이 있을지 모른다.
커리어가 끊길 수도,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건 하나였다.
내 시간을 내가 통제할 수 있고, 아이의 매일을 함께할 수 있다는 것.
나는 주저 없이 안개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의사 그만두고 뭐 할 건데?" 친구들도, 부모님도 물었다.
"일단은 아이부터 좀 보고요."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속으로는 다른 불씨를 품고 있었다.
육아를 핑계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육아와 병행할 수 있는 '새로운 업'을 찾고 싶었다.
다행히 모두가 "네 결정이라면 이유가 있겠지"라며 응원해주었다.
그 믿음이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론 증명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뒤 생기는 하루 7시간.
그 빈 시간, 텅 빈 모니터 앞에서 질문이 찾아왔다.
'의사가 아니면서, 내 시간을 자유롭게 쓰고, 세상에 임팩트도 줄 수 있는 일. 그런 게 있을까?'
그때 우연히 발견한 것이 이어드림스쿨이었다.
우연히 발견한 이어드림스쿨. AI 커리큘럼에 창업 지원 트랙까지.
별생각 없이 지원서를 썼고, 덜컥 합격했다. 그리고 겁이 났다.
나는 코딩을 전혀 할 줄 몰랐으니까.
절벽 앞에 서다
첫 달은 방통대에서 미리 익혀둔 SQL 덕분에 그럭저럭 버텼다.
문제는 알고리즘이었다.
"자, 오늘은 DFS(깊이 우선 탐색)를 구현해 봅시다."
강사님의 말이 끝나고 화면에 코드가 쏟아졌다.
def dfs(graph, node, visited):
visited.add(node)
for neighbor in graph[node]:
if neighbor not in visited:
dfs(graph, neighbor, visited)
재귀? 스택?
눈앞이 하얘졌다.
의학에서 '재귀(Recur)' 는 암이 재발했다는 무서운 뜻이다.
그런데 여기선 함수가 자기 자신을 호출하는 것을 말한단다. 같은 단어인데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손은 키보드 위에 있는데, 무엇을 타이핑해야 할지 몰랐다.
커리큘럼을 다시 봤다. DFS, BFS, 동적계획법, 백트래킹...
일주일 안에 11개 알고리즘을 '기초'로 배운단다. 기초라기엔 너무 가파른 절벽이었다.
그날 밤, 노트북을 덮으며 처음으로 후회가 밀려왔다.
'내가 왜 이걸 시작했지. 그냥 병원이나 갈걸.'
새벽 2시의 천장
낮에는 강의, 저녁에는 육아.
윤슬이를 재우고 다시 책상에 앉는 게 계획이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아빠랑 잘래."
작은 손이 내 손을 잡으면 거절할 수 없었다.
눈을 감고 토닥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눈을 뜨면 새벽 2시.
공부하기엔 늦었고, 다시 자기엔 찜찜한 시간.
'이러다 이도 저도 안 되는 거 아닐까?'
'중간에 그만두면 뭐라고하지.'
'아내한테도 면목이 없다.'
어둠 속에서 천장을 보며 자괴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완벽하지 않아도 멈추지 않는다
새벽 2시의 자괴감. 진도를 놓친 초조함.
완벽한 하루는 단 하루도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포기한 하루도 없었다.
윤슬이를 재우고 비틀거리며 일어나 책상에 앉았다.
어제 못 푼 문제를 다시 펼쳤다.
이해가 안 되면 유튜브를 찾았고, 그래도 모르면 챗GPT와 동기들에게 물었다.
한 문제, 또 한 문제.
엉성한 코드라도 일단 돌아가게 만들었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내가 싸우는 상대는 난해한 알고리즘이 아니었다.
'틀리면 안 된다는 강박' 이었다.
의사로 살며 굳어진 그 완벽주의가, 오히려 나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었다.
작은 점들이 연결되다
꾸준함은 배신하지 않았다.
1차 코딩테스트. 4문제 중 하나도 제대로 못 풀 줄 알았는데, 50등 안에 들어 장학금을 받았다.
"이게 되네...?"
자신감이 붙자 욕심이 생겼다.
3차 코딩테스트의 목표는 '미국 연수'. 상위 40명에게 주어지는 실리콘밸리 티켓이었다.
가슴이 뛰었다. 그리고 합격했다.
실리콘밸리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생각했다.
'9개월 전, 파이썬 설치법도 모르던 내가 지금 구글 본사 앞에 있네.'
이미지 분류 경진대회에서는 1등을 했다.
영상의학과 출신도 아니고, GPU도 부족했다.
예전 같으면 "내 분야가 아니야"라며 피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치열했던 새벽들을 지나며, 내 안의 태도가 바뀌어 있었다.
"어렵다고 피하면 영원히 남의 것이다. 일단 부딪혀서 깨져봐야 내 것이 된다."
상장보다 값진 것
다시, 졸업식 무대 위.
상장을 받아 들고 객석을 바라봤다.
객석에는 함께 밤을 지새운 동료들뿐, 가족들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이 상장은 나 혼자 받은 게 아니라는 것을.
새벽 2시에 졸린 눈을 비비던 나.
"아빠랑 잘래"라며 손을 잡아주던 윤슬이.
"당신은 잘할 거야"라고 묵묵히 믿어준 아내.
그 모든 시간이 합쳐져 오늘의 결과를 만들었다.
9개월간 내가 진짜 얻은 것은 장관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완벽하지 않아도, 멈추지 않으면 결국 닿는다'는 경험이었다.
길이 없으면 만들면 된다
나는 코딩을 몰랐다. 육아와 공부를 병행해야 했다.
완벽한 조건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시작했다. 부족한 채로.
그랬더니 부족함이 나침반이 되었다.
DFS가 어려우면 DFS를 팠고, 이미지가 약하면 이미지 대회에 나갔다.
길이 보이지 않아서 못 간 게 아니었다.
걸어가니까 길이 생겼다.
커리어 전환을 고민하는 당신에게, 그리고 전문가의 타이틀을 내려놓기 두려운 분들에게 말하고 싶다.
우리의 진짜 적은 '실력 부족'이 아니다.
'완벽한 타이밍을 기다리는 마음'이다.
지금 서 있는 그 자리가 바로 출발점이다.
에필로그: 딸에게
이제 나는 의사로서의 8년과 AI 개발자로서의 9개월을 엮어 새로운 길을 만들려 한다.
헬스케어 AI 창업이든, 1인 개발이든, 바이브코딩이든 상관없다.
확실한 건 더 이상 '남들이 정해준 길'은 가지 않겠다는 것이다.
매일 아침, 나는 윤슬이의 손을 잡고 어린이집 문을 연다.
"아빠, 오늘도 일찍 데리러 올 거지?"
"응, 재밌게 놀아."
백령도 화면 속에서만 딸을 보던 아빠는, 이제 아이의 체온을 느끼며 걷는 아빠가 되었다.
언젠가 딸아이가 자신만의 갈림길 앞에 설 때, 나는 이 마음을 유산으로 물려주고 싶다.
"길이 없어도 괜찮아. 네가 걸어가면, 그게 곧 길이 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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